면도날
윌리엄 서머셋 모옴, 안진환 옮김.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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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날
『인간의 굴레에서』, 『달과 6펜스』와 함께서머싯 몸의 3대 장편소설 중 하나1930년대 유럽, 그 풍요와 야망의 시대를 배경으로 꿋꿋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한 젊은이의 구도적 여정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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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을 시작으로 문학의 맛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나에겐 정말 고맙고 소중한 친구들이 있기에 참존가(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라는 책도 알게 되어 읽었지만, 이번 책 역시 그러하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여행하고 싶어 지고, 삶의 의욕이 생기게 되는 책이라나?
친구들로부터 책에 대한 예찬과 추천은 끊이질 않았기에, 군대 휴가 나온 친구 집에 급하게 들러서 결국 빌려서 읽게 되었는데 그 책이 바로 오늘 소개할 서머싯 몸의 면도날이다.

책에 대한 친구들의 칭찬과 추천이 끊이질 않았던 책, 면도날.
가슴 속 피가 끓어오르고, 여행을 가고 싶어 지고, 래리(작중 인물) 같은 삶을 살고 싶어 지고 등등.
나도 그렇고 이 책을 추천해주는 나의 절친들은 평상시 과장을 좀 하는 것이 없지 않아 조금 있지만, 알면서도 그들의 이 책에 대한 간단한 서평과 느낀 점은 나로 하여금 흥분과 기대를 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의 말이 백번 맞았다.
그러나 이 책의 결말에서 작가는 특정한 상황과 어떤 충격적인 결말을 연출하지않고 작품의 처음과 끝이 동일한 리듬으로 묵묵히 전개된다.
몰입도는 두말할 것도 없이 훌륭했기에, 비록 500여 페이지의 분량에 달하는 장편 소설이지만 하루 날만 잡았다면 사흘이 아닌 당일날 바로 다 읽었을 것 같다.
이 훌륭한 전개와 몰입도는 나에게 책을 읽으면서 작중 인물들의 대화 속에 당장이라도 같이 끼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게 했고, 이들의 생김새는 이미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특히, 이 소설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래리'라는 인물의 삶과 그가 나아가려하는 여정은 나의 가슴속 열정을 부글부글 끓게 만드는 것을 넘어 그 위에 기름마저 부어버렸다.
시중에는 많은 자기계발서가 있다. 나는 자기 계발서를 딱히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자기 계발서가 하는 얘기는 대부분 거기서 거기로 똑같다. 우리가 다 아는 얘기이다.
그러나 자기계발서를 쓴 작가들은 우리가 아는 똑같은 얘기를 할 수밖에 없으니 자기 계발서가 지루한 것은 당연한 것이고, 자기 계발서에서 얻은 것을 행동으로 실천할 때에 비로소 얻음이 있다.
모든 자기계발서가 그렇듯, 이는 더운 여름날 갈증을 잠깐 해소하게 해주는 코카콜라고, 어두운 곳을 비춰주는 배터리가 얼마 안 남은 손전등이다. 그냥 순간적이다.
면도날은 천천히 조용히 가슴 속에 스며들어 나를 자극한다. 자기계발서처럼 나에게 어떤 행동과 실천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강요하지 않음이 오히려 나로 하여금 움직이고 싶게 하고, 나를 사랑하게 하고, 멀리 그리고 더 높이 바라보게 한다.


목차는 총 7장으로 구성되어있고, 목차를 넘기고 나면 장엄하게 한 문구가 쓰여있다.
그리고 이 책의 장엄한 여정은 저 말의 뜻을 찾기 위해 전개된다.
사회가 바라는 삶과 내가 바라는 삶
이 책의 뒤편에 이렇게 적혀있다. '비정한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바치는 작품.'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청년들이 고민하는 것에 대해 이 책이 어느 정도 이정표 역할을 해주기에 위와 같이 소개를 한 것 같다.
극단적이지만,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면 우리는 사회가 바라는 삶과 내가 정말 추구하고 싶은 삶이라는 기로에 놓여 자주 방황한다.
나는 어렸을 때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알아가는 것이 많아지니 더욱 소극적이게 되고 사회에 들어갈 것이라는 두려움이 마음속에 천천히 뿌리내리는 것 같다.
그렇기에 요즘 경제적으로 독립을 얻고 싶고, 얼른 직장도 다니고 싶고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작중 인물 래리는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데, 그 삶은 정신적 세계를 추구하는 삶이다.
사실 표면적으로만 보면 터무니없고 고리타분한 주제이고 그것이 래리가 추구하는 삶이라고 볼 수 있으나, 작품을 읽으면서 후반부로 갈수록 나는 그냥 래리와 한 달만 동행하고 싶어 졌다.
그리고 진리란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경제적 독립"이 내가 바라는 목표이고 현재 나의 진리이다 라는 편협한 생각과 가치관에서 좀 더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시야가 생겨져 있었다.
정신적으로 해방되고 자유로움을 얻는다는 것은 어떤 세계인지 감히 가늠도 안 잡힌다.

윤회에 대한 나의 생각
책의 후반부 6장에서는 래리와 작가가 나누는 길고 긴 얘기의 재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둘의 얘기라고 보기는 사실상 힘들고, 래리의 일방적인 스토리텔링과 작가의 경청이다. (작가는 래리만큼 멋있다. 정말 잘 들어준다.)

6장은 줄거리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전혀 되지 않는다고 작가는 얘기하나, 이 대화가 없었더라면 나는 이런 책을 쓸 생각조차 안 했을 거라고 나를 책 속으로 더욱 잡아당긴다.
래리와 작가의 대화는 점점 절대자의 존재와 자유 그리고 진리 등 영원적인 것에 대한 것으로 흘러간다.
읽으면서 감탄스러웠던 것은 6장에서 다뤄지는 사상과 내용은 절대 쉬운 것이 아닌데, 작가가 이만치 쉽게 풀어낸 것이 문득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번 참존가에서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 책에서 다뤄졌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면도날에서도 한 사상이 다루어졌다. 그것은 바로 윤회이다.
윤회는 간단히 말하면, 인간이 죽으면 다음 생에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나고 계속 돌고 돈다는 건데, 우리의 자아는 이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말보다는 아래 책 속 한 부분을 첨부하는 것이 더 좋겠다.

바다에서 증발한 물이 다시 구름으로 올라가 소나기가 되어 내리고 이는 개천으로 흘러들어 가 강물을 굽이 따라가다 결국 다시 바다로 돌아온다. 윤회를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 말을 읽고 영혼은 세상을 돌고 돌아도 육신은 다르니 그것은 개성을 상실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책 속 작가가 나를 대신해해 주었다.
그리고 래리는 결국 개성이라는 건 자아의식의 표출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대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이때 래리의 대답으로부터 내가 느낀 것은 윤회 사상, 자아실현과 추구 등의 추상적인 것은 오히려 더욱 아니었고,
나의 육신이 현재(顯在)하듯, 나의 영혼 또한 그렇다는 것과 나의 영혼은 어디로 와서 나에게는 몇 번째로 왔는지는 몰라도 금생(今生)에선 나와 함께 있으며 나의 영혼에게 자유를 주고 싶고 잘해주고 싶어 졌다.
윤회? 사실은 잘 모르겠고, 이해가 안 된다. 아니 이해가 안 되는 게 아니라 와 닿지 않는다.
그러나 래리의 대답과 이 책은 나에게 외부적 방향성뿐만이 아니라 내부적인 갈등에 대한 방향성도 제시해주는 것 같다.
결론
책에 대해서 그리고 작중 인물인 래리에 대해 더 얘기하고 싶고 더 예찬하고 싶지만, 래리가 말했듯 침묵 또한 충분한 말과 대화가 될 수 있으니 나머지는 가슴속에 간직하려 한다.
결론을 얘기하자면 이 책은 나의 가슴을 뜨겁게 했지만, 냄비가 팔팔 끓어올랐다가 금세 꺼지는 듯한 뜨거움이 아닌 아주 천천히 뜨거운 온기로 나를 감싸 어딘가로 날아가게 해주는 열기구를 하늘로 띄우는 뜨거움이었다.
래리가 너무 멋있었다. 래리와 식사를 한번 해보고 싶어 졌고, 래리가 가는 곳을 동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다.
물론, 다른 작중 인물들도 멋있었다. 작가가 얘기하듯 앨리엇, 이사벨, 그레이, 소피, 수잔 모두 자신이 추구하는 삶, 원하던 곳으로 돌아갔다고 할 수 있다. (소피는 사실 잘 모르겠다.)
그리고 래리만큼 멋있었던 것이 작가였다. 그는 모든 이들의 얘기를 잘 들어줬으며, 얘기를 잘 들어준다는 것만큼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도 없다. 작가는 그런 인물이었다.
소설에 대한 재미와 감동 그리고 뜨거움을 매우 잘 느꼈던 책이다.
파리가 매우 가고 싶어 지는 새벽 3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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